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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1.0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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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화 국장.jpg
정승화 주필/편집국장

 

신문 없는 고장, 영양에서 ‘영양신문’이 문을 연지도 어느덧 반년이 넘었다.

 

이 대명천지의 세월에 신문이 없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신문이 없는 곳은 딱 2곳. 영양군과 울릉군이 그 주인공이다.

 

하긴 ‘요즘같은 세상에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지 누가 신문을 보는교?’ 라고 말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래도 지역뉴스와 다양한 인심을 실어 나르는 파발마로 신문만한 게 어디 있겠는가.

 

그것도 오롯이 그 지역의 깨알 같은 소식들을 실어서 가정과 사무실에 배달해주면 각박해지는 인생살이지만 잠시라도 웃음과 삶의 서정을 느낄 수 있는 매개체로서 신문이 딱이다.

 

대한민국에서 알아주는 신문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등 내노라하는 명성의 신문들이 있지만 그들의 눈길이 명확히 미치지 못하는 곳이 바로 영양군과 같은 시골지역이다.

 

수도권처럼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자신들의 위용을 자랑하고 조명을 받기를 원하는 소위 제4부 권력인 언론의 입장에서 인구 2~3만명도 채 안되는 시골에서 신문업을 운영한다는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사실인 게다.

 

이런 상황에서 바보 같은 이들이 영양에서 신문을 제작한다고 들어간 게 지난 4월. 어려운 준비과정을 거쳐 마침내 지난 7월 3일 ‘영양신문 창간호’를 발간하고 군민들의 가정에 배달했다. 어느덧 지령 제9호.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영양신문도 영양의 한 역사로 쌓이고 있다.

 

문민정부시절인 지난 1990년대 초 언론자유화 이후 우후죽순 격으로 언론이 생겨나면서 요즘 넘쳐나는 직업이 ‘기자’들이다. 글을 적는 직업인 기자들이 많으니까 다양한 소식들이 넘쳐나겠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새로운 소식은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한 뉴스가 신문마다 도배를 한다.

 

이유인즉 시군마다 홍보를 담당하는 공보실에서 각종 기사성 보도자료를 동일하게 배부하는데다 요즘 공무원들의 수준이 웬만한 신문사 기자들보다 글을 잘 쓰는 수준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란다.

 

여기에 종이신문 뿐만 아니라 SNS의 발달로 인터넷 언론사들이 대거 탄생하면서 각 시군마다 출입기자만 1백여명에 육박할 정도로 많다고 하니 가히 ‘기자과잉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인구 1만7천여명에 불과한 영양군도 예외는 아니어서 타 시군과 마찬가지로 출입기자들이 이정도 규모에 이른다고 한다. 영양신문도 이들 중 한명이니 기자과잉시대를 부추긴 주범이라 할 수 있다.

 

포항이 고향인 필자가 영양신문 기자 겸 편집국장으로 취재를 하다보면 늘상 듣는 말이 ‘고향이 영양인교?’란 말이다. 한두명이 아니라 영양군민들 대부분이 이 질문을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질문이다.

 

영양에서 활동하는 신문사가 고향이 영양이 아닌 외지인이라고 하면 웬지 생경하게 쳐다보고, 이방인을 바라보는 눈길을 저절로 느낀다.

 

그들은 왜 묻는 걸까. 이 같은 질문에는 영양의 보수성과 폐쇄성이 도사리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영양이 고향’이어야 ‘우리’라는 동질감이 있을텐데 ‘타향사람’이 영양에서 생활하며 언론사를 운영한다는 자체에 일종의 ‘거부감’이 스며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공동체적 인식이 ‘배타성’으로 작용해 외지인들을 밀어내는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인구 7만을 자랑하던 호시절 같으면 ‘영양사람’ 만으로 똘똘 뭉칠 수 있지만 이제 인구절벽의 낭떠러지에 쓴 영양군에서 이 같은 인식은 ‘시군소멸’을 부르는 화가 될 뿐이다.

 

인구 51만 경북 제1의 도시인 포항에서 고향을 묻는 이들은 많이 없다. 포스코가 들어선 이후 전국각지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근로자들의 대부분의 고향이 타향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고향은 자신이 태어난 뿌리지역을 일컫는 말이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몸담고 있는 곳이 바로 고향이다. 제2의 고향이지만 말이다.

 

영양군이 인구증가를 위해 오도창 군수가 중심이 돼 모든 군민들이 노력하고 있다. 인구 2만명이라도 회복하자는 것이 지금 영양군의 현실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외지인들의 고향을 영양으로 만들어주자는 것이 필자의 제언이다.

 

체코출신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이렇게 말했다. “잃어버린 고향을 찾기 위해서 인간은 타향으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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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칼럼〉 정국장, 고향이 ‘영양’ 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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