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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12.2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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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發里)는 수비(首比)면 중심지이며

수양산 중심으로 마실이 맹글어져 있니더.

 

발리의 발(發)은 시작을 뜻하는 거로 깊은 산중이지만

마실이 시작되는 즉, 수비면의 첫 마을

이라는 뜻으로 발리(發里)라꼬 켔니더.

 

1914년 행정구역 바낄때는 기존의 발리에다

화광(화랑꼴)캉 용수꼴 등을 엄체가 발리라 카게 된니더.

 

(창뒷마ㆍ금촌)

조선시대 중엽때 나라의 곡식을 넣어두는

큰 창고가 마실 앞에 있어,

창고 뒤에 있는 마실이라는 뜻으로 창뒷마라 카게 된니더.

임진왜란(1592년)때 봉화금씨들이 들어온 후

후손들이 점점 번성해지면서 금씨들만 모데 살게됬따꼬

금촌(琴村)이라 카게 된니더.

 

(반곡)

발리에 있는 약천정(藥泉亭)터 내에

넓꼬 팬팬한 반석(盤石)이 있는데

그 반석 근바있는 마실이라꼬 반곡(盤谷) 이라 카니더.

 

(용수골)

용소(龍沼)가 있는 골짜기라꼬 용수골이라꼬 카게된니더.

옛날에 용(龍)이 휘돌아치는 쏘에서

용이 멱을 깜꼬 있었는데

사람캉 마주치자 엉겁결에 디게 놀라

곽쭈에 입으로 안개를 뿜으며 승천했따 케가꼬

용추꼴(龍湫谷)이라 카다가

음이 바께 용수꼴이 된니더.

 

(삼거리ㆍ장승백)

발리에서 수하 방면캉, 울진군 온정면 방면

그리고 영양읍 방면으로 갈라지는

시 갈래 길이 있따꼬 삼거리라꼬 카니더.

과거 여기에는 장승이 서가 있었는 데라꼬

장승백(將丞) 혹은 장승배기라꼬도 카니더.

 

장승(將丞)을 맹글게 된거는

과거 선비가 말캉 절벽 앞을 지나는데.

갑짜기 말이 울며 꿈쩍또 하지 않아가

내려가꼬 근바를 살펴보께네.

풍기황씨라 새겨진 방울이 있어 그걸 조가

성황당 신주로 모셨는데.

그뒤 짐승들에게 이 당제 음식을 믹였떠니

마카 죽어가꼬

이를 방패 할라꼬 장승을 맹글게 됬니더.

 

(화랑골)

신라시대때 화랑도들이 몸캉마음을

수양하던 데라꼬

화랑꼴(花郞谷)이라꼬 켔따 카기도 하고.

풍수지리상 마실모양이 꽃송이 같따 케가

 

 

 

화랑꼴이라 케따 카기도 카니더.

 

(오창태/영양사투리보존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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